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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도에 다시 읽은 김형욱 회고록
정쟁으로 얼룩진 과거사 논쟁에 대한 새로운 방향타
변희재   |   2006-03-03

국가 정보원 과거사 진실규명을 통한 발전위원회는 총 98건의 사건 중 7가지 사건을 먼저 조사하고 있다. 그중, 동백림 사건, 인혁당 사건, 김대중 납치사건, 경향신문 강제매각 사건, 등등은 중간발표 과정에서 대부분 진실이 드러났다. 아직까지 미궁에 빠진 사건은 김현희 카알기 납치사건과, 바로 김형욱 실종사건이다.
 
 재미있는 점은 박정희 정권 시절 중앙정보부장을 6년 간 역임한 김형욱이 위의 대부분의 사건에 연루되어있다는 것이다. 위의 주요 사건들 이외에 그는 일찌감치 실미도 북파공작원, 정인숙 살해 사건 등등 대해서 모든 것을 밝혀놓았다. 바로 그 유명한 <김형욱 회고록-혁명과 우상>이라는 책에서 말이다.
 
 <김형욱 회고록>은 80년대 비공식적으로 300만부 이상 팔린 것으로 알려져있다. 김형욱 회고록이 이렇게 놀라운 대중적 파급력을 지니게 된 데는 여타의 회고록과 다른 몇 가지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첫째, 박정희 정권 하에서의 2인자의 위치이자, 모든 정보를 관할하는 중앙정보장을 6년간 역임한 그의 경력 자체가 책의 핵심 콘텐츠이다. 그는 그의 위치가 아니었다면 도저히 알 수 없는 박정권 하의 모든 정보를 책에 풀어놓았다.
 
 둘째, 그가 회고록을 쓴 목적은 일반적인 회고록과 달리, 자신의 과거에 대한 참회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회고록은 하나마나한 자기 자랑과는 달리 철저히 과거에 대한 진실 토로로 일관되어 있다.
 
 셋째, 이 책을 집필한 당시 박사월(현 민주당 김경재 전 의원)은 한창 박정희 정권에 대한 민주화 투쟁을 미국에서 벌이고 있었다.
그가 2년 여간 김형욱과 만나면서, 그의 고백을 끌어내기 위해 목숨을 건 흔적들이 책 곳곳에 보인다.
 
 노무현 정권 들어 과거사 다시 읽기가 붐을 이루면서, 두 편의 현대사 관련 책이 출판되기도 했다. 바로 전북대 신방과의 강준만 교수의 <한국현대사 산책>과 서울신문의 시사만평가 백무현의 <만화로 보는 한국현대사>가 바로 그것이다. 이들 책은 아무래도 기존의 제도권 교과서에 다루는 박정희의 모습과 달리, 그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견지하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박정희에 대한 담론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현실 정치인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탓인지, 냉정한 역사적 평가와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박정희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평가를 내보이면, 이는 곧바로 야당에 대한 정쟁으로 인식되고 있다. 또한 이른바 진보개혁 쪽 역시 박정희에 대한 과거사 비판으로 야당을 압박하려는 의도 역시 드러내고 있다. 그들의 의도가 순수할지 몰라도, 박근혜 대표가 벌써 야당 대표로 2년째 현실정치 활동을 하고 있는 이상, 오히려 박정희 정권에 대한 냉엄한 평가에 해가 되는 감이 있다. 설사 명백히 박정희의 실정이 드러나고 있다 하더라도, 이는 역사적 평가가 아닌 현실 정치의 이해관계로 해석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보자면, 박정희와 혁명을 함께 했고, 현실의 정치적 들실과는 무려 30여년 떨어진1976년부터 작성된 <김형욱 회고록>이야말로 과거사를 바로볼 수 있는 훌륭한 객관적 자료가 되고 있다. 더구나 이를 직접 작성한 박사월의 재능 때문인지, 아니면 김형욱이라는 사람 자체의 능력 때문인지, 이 책은 단 한 줄의 사적인 감정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정확한 자료와 기억을 근거로 작성되어 있다. 오히려 최근 발표되는 과거사 진실보다도 더 냉정하고 더 객관적이다.
 
 이 책의 신뢰성 또한 과거사 발표 등으로 인해 한층 더 인정받고 있다. 특히 가장 빛나는 대목은 김대중 납치사건의 전말이다. 김형욱은 미국으로의 망명 이후, 동백림 사건에 무리하게 학술연구조직인 민비연을 끌어들인 것에 대하여 참회하는 마음으로, 자발적으로 김대중 납치사건을 조사했다고 한다. 그는 예전 자신들의 중앙정보부 부하들과 일일이 면접을 하여, 실제로 이 사건에 개입한 사람들의 진술을 얻어낸다.
그에 중앙정보부장 특유의 논리력을 더해, 김대중 납치 사건의 전모를 서술해놓았다. 그는 이 내용을 미국의 프레이저 청문회에서 낱낱이 밝혔다. 그러나 웬일인지 미국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고 그는 이에 “대체 김대중 납치 사건에 직접 가담한 사람들의 증언을 앞에 놓고도 신빙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게 말이나 되는가”라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역사는 그에 대해서 보상이라도 해주려는 듯, 그의 진술 내용은 최근 발표된 국정원의 조사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단 김대중 납치사건 뿐 아니라 동백림 사건, 인혁당 사건, 실미도 북파공작원 사건 등, 그의 회고록은 시간이 흐를수록 점차 진실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가 아무런 사심없이 자신의 참회를 위해 진실만을 밝혔다는 점이 드러나는 것이다. 물론 앞서 말한 대로, 아직 제대로 규명도지 않은 김형욱 본인의 실종 사건만을 제외한다면 말이다.

 그러나 이 사건도, 최근 직접 박정희와 만난 뒤 김형욱을 프랑스에 납치에 양계장 닭모이로 처리했다는 사람이 나타나면서, 점차 그 진실이 드러나고 있다. 이는 김재규의 지시로 살해했다는 국정원의 발표와는 사뭇 다른 내용이다. 김형욱 회고록의 저자 김경재 전 의원 역시 국정원 발표보다는 차지철 라인이 가동되었다는 설에 무게를 두고 있다.
 
 진실의 규명만을 보자면 김형욱 회고록보다 더 좋은 자료는 없어 보인다. 그러나 그의 진술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진보개혁 진영 측에서도 조금은 불편한 내용들이 들어있다. 바로 북한에 대한 그의 시각이다. 그는 박정희조차도 공산주의자라 의심했을 정도로 철저한 반공주의자였다. 그래서, 분명히 확대되었기는 하지만, 동백림 사건의 경우 그의 진술에 따르면 “국가 안보를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자국의 지식인들이 북한 측과 해외에서 접촉하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다”라는 생각 역시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기도 하다.
 
 어찌보면 읽기에 따라서는 오히려 5.16 군사혁명이나 그 이후의 박정희 통치 기간이 한국의 현대사에서 필연적인 진통의 과정으로 이해될 여지도 있다. 김형욱의 시각은 박정희의 집권 자체가 잘못되었다기 보다는 왜 그러 중대한 역할을 맡은 사람이 사적인 이해에 매몰되어 대사를 그르치냐는 질타에 가깝기 때문이다.
 
 때 아닌 과거사에 대한 논쟁이 그치지 않는 이 시점, 만약 김형욱이 생존해 있었더라면 그는 무슨 말을 해야 했을까? 그의 생각을 현재 들을 수는 없어도, 원고지로만 5000매 분량이 넘는 김형욱 회고록만 다시 읽어도 충분히 그의 생각은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그래서 1980년대 보다도 2006년에 그의 회고록의 가치는 더 하지 않을까? 
 
이 책을 쓴 김경재 전 의원(민주당)은 김형욱의 파리 실종은 문제의 김형욱 회고록과 관계가 있고, 박정희의 죽음 또한 김형욱 실종과 말접한 관계가 있다고 확신하고 있다. 한 권의 책이 한국현대사를 바꿔놓았다는 것이다.
김형욱이 파리에서 실종 된 지 20일 후인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청와대에서 김형욱의 후임인 중앙정부부장 김재규에 의해 생을 마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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