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민부론이 옳다

아담 스미스의 ‘self-interest’는 ‘자기 이익 추구’

크게작게

서옥식 전 연합뉴스 편집국장 2019-09-23

국부론은 틀렸다 민부론이 옳다

아담스미스의 국부론은 오역, 민부론이 정역(正譯)

 

서옥식 박사, 민부론 둘러싼 여야논쟁에 오역 지적, 국부론은 일본식 번역

민부론용어는 김두관 의원 아닌 1980-90년대 서울대 김수행 교수가 먼저 사용

스미스는 ‘Wealth of Nations’를 국가 아닌 전 국민의 를 총칭하는 개념으로 사용

스미스 책명에 나오는 ‘Nations’국가아닌 국민으로 해석해야 옳다

‘self-interest’자기이익즉 자기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일을 한다는 뜻인데 국내에서 이타심의 반대개념인 이기심으로 오역하는 바람에 마치 자본주의가 시장만능주의, 자유방임주의, 탐욕주의인 것으로 가르친다

스미스는 책에서 ‘self-interest’를 이기심(selfisness) 아닌 자기애(self-love)의 대체어로 사용

스미스는 자신의 책에서 오히려 관용, 양보, 도덕, 자비심 등의 가치를 강조했다

보이지 않는 손’(an invisible hand)은 가격결정원리가 아닌데 국내에선 수요공급에 의한 가격결정원리라고 오역해 가르친다

 

서옥식 전 연합뉴스 외신1부장-편집국장(政博)

 

 

정치권은 23일 자유한국당이 전날 발표한 민부론(民富論)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였다. 자유한국당이 지난 22일 발표한 ‘2020 경제 대전환: 민부론(民富論)’을 통해 소득주도성장과 탈()원전으로 대표되는 문재인 정부의 국가 주도형 정책을 폐기하고 개인과 기업이 주도하는 자유시장경제 체제로 경제 방향을 전면 전환하여 ‘20301인당 국민소득 5만 달러, 가구당 연간소득 1억원, 중산층 비율 70% 달성이라는 3대 목표를 내걸고 나왔다.

 

하지만 더불어 민주당은 실패한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책이라고 했다. 또 민주당 소속 김두관 의원은 2006년부터 민부정책연구원 이사장을 맡아왔다며 자신의 민부론을 한국당이 도용했다고 주장했다. 정의당의 심상정 대표도 자유한국당의 민부론은 민폐론이라고 폄하했다.

 

그러나 황교안 대표는 이날 “(문재인 정권이) 야당이 공들여 내놓은 대안을 폄훼하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면서 총 165쪽에 달하는 민부론 내용을 공개하고 이는 교수 41명과 전문가 22, 국회의원 27명 등 총 90명이 지난 6월부터 50여 차례에 걸쳐 토론과 세미나 등을 진행한 결과를 담았다고 밝혔다.

 

일부 언론은 민부론이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國富論)의 변용 또는 국부론이란 말에서 따온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스미스가 말한 것은 국부(國富) 보다는 민부(民富)의 창출이다. 따라서 민부론으로 번역하는 것이 정확하다. 국부론은 일본에서의 번역을 우리가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스미스의 지향점은 ()국가의 부()’의 증진이 아니라, ‘국민의 의 증진이다. 부국강병이 아니라 감세(減稅) 및 국민 개개인의 경제활동에 대한 정부의 지나친 규제와 간섭을 배제한 제폭구민(除暴救民)의 국민복리 사상이다. 따라서 책의 원제 ‘An E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 국민의 부의 성격과 원인에 관한 탐구로 번역돼야한다. 이런 점에서 약칭인 국부론이란 이름은 오역이다. 국부론이 아니라 민부론’(民富論)이 더 어울리고 정확한 이름이다. 책명에 나와 있는 영어의 ‘Nation’국가아닌 국민으로 해석해야 옳다. 실제 스미스가 당시 영국의 중상주의를 비판하면서 내놓은 ‘the Wealth of Nations’는 국가가 아닌 전 국민의 부를 총칭하는 개념이었다.

 

지난 1989년부터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하면서 마르크스 경제학을 강의해온 김수행(金秀行, 2015년 작고)교수는 자유주의 경제학자인 스미스에게는 국부론보다는 민부론이 더 어울리는 번역이라고 말했다. 김교수는 비주류(非主流) 경제학자이면서도 마르크스의 ‘Das Kapital’과 스미스의 ‘An Enquiry into the Nature and Causes of the Wealth of Nations’을 각각 자본론국부론으로 번역, 출간했다. 그는 국부론으로 번역한 데 대해 국내에 오래전부터 있어온 관행을 따랐을 뿐이라고 밝힌 바 있다. 따라서 민부론이 자신의 독창적인 것이라는 김두관 의원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필자도 2014 펴낸 오역의 제국-그 거짓과 왜곡의 세계에서 국부론이 아니라 민부론이 정역(正譯)이라고 서술한 바 있다.

 

기왕 나온김에 국내에 시판된 스미스의 국부론(이하 민부론이라 하지않고 관행에 따라 국부론으로 칭함)에 대한 잘못된 번역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잘못된 번역 때문에 모든 학교에서 자본주의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갖도록 가르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사고는 과거의 민주노동당과 현재의 정의당에 심하다. 상당수 더불어민주당이나 청와대 등 정부 공직자와 일부 언론인도 마찬가지다.

 

스미스의 국부론’(1776)에 다음과 구절이 나온다: It is not from the benevolence of the butcher, the brewer or the baker, that we expect our dinner, but from their regard to their own self-interest. We address ourselves, not to their humanity but to their self-love, and never talk to them of our own necessities but of their advantages.” 흔히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속성을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되는 이 대목 번 문장은 ‘self-interest’이기심으로 번역하여 국내 거의 모든 서적에 우리가 저녁식사를 즐길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善意(자비심, 박애심)덕분이 아니라 그들의 이기심때문이다.”로 번역돼 있다.

 

그러나 ‘self-interest’를 이타심(altruism)의 반대어인 이기심(selfishness, greediness)으로만 번역하는 바람에 아담 스미스를 약육강식의 자본주의자, 자유방임주의자, 시장만능주의자로 만들어 버렸다. 우리가 흔히 어떤 사람이 이기적이다’, ‘이기주의자다고 할 때 그 사람은 남을 배려할 줄 모르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리사욕만 추구하는 탐욕적인 인간으로 인식하게 된다.

 

‘self-interest’이기’(利己), ‘사리사욕 추구란 의미가 없는 것을 아니지만 스미스가 여기서 말하고 있는 것은 정확히 자기이익이다. 우리가 저녁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돈벌이에 대한 관심덕분이라는 뜻이다. , 자기에게 이익이 되기 때문에 소나 돼지를 잡아서 팔고, 술을 빚으며, 빵을 굽는 는 등 일을 한다는 아주 당연한 이치를 설명한 문구다. 첨언하면 자신의 노력에 대한 경제적 이익이나 보상이 없다면, 어느 누구도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이다. 인간은 자기 몫이 주어져야 열심히 일한다. 스미스는 이 책에서 오히려 관용, 양보, 자비심 등의 가치를 강조했다.

 

다만 인간의 이익추구에 대한 관심이 다른 어떠한 동기보다 더 강력하고 지속적으로 인간에게 동기부여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것은 자원의 희소성(scarcity) 때문이다. 그런데도 국내 번역서들은 대부분 ‘self-interest’탐욕으로 이해될 수 있는 이기심으로 오역하고 있다. 이러한 오역 때문에 학교에서 자본주의는 이기주의, 그리고 자본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공산주의(사회주의)는 이타주의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기심을 영어로 정확히 말하면 ‘selfishness’, ‘self-centeredness’등으로 표현한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selfishness’‘self-centeredness’란 말을 한 번도 사용한 적이 없으며, 언제나 ‘self-interest’, 그리고 유사어로 ‘self-love’(자애심, 自愛心)란 말을 사용했다. ‘자기애’(自己愛) 때문에 푸줏간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이 일을 한다는 얘기다. ‘자기사랑은 자신을 아끼는 마음인데 반해 이기심은 다른 사람의 피해를 고려하지 않는 탐욕이다. 이기심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자기사랑은 타고난 인간의 본성일 뿐이다. 이러한 번역 때문에 스미스의 이론이 탐욕적인 것으로 잘못 해석 된 것으로 보인다.

 

스미스가 위 문장에서 말한 ‘self-interest’가 반드시 이기심이 아니라는 것은 그 다음 번 문장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번 문장은 우리는 그들(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인류애에 호소하지 말고 그들의 자애심’(自愛心)에 호소해야 하며, 우리의 필요성(우리가 필요로 하는 고기, , 빵 등의 필수품)을 설명하지 말고 그들에게 이익이 된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로 번역할 수 있다. 여기서 ‘self-interest’‘self-love’(자애심)란 말로 대체된 것을 보더라도 스미스가 강조한 것은 무조건 자기욕심만 챙기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김수행 교수는 주류 경제학자들은 보이지 않는 손을 통해 스미스를 자유방임주의자, 시장만능주의자로 인식하고 있지만, 이는 철저한 오류라고 주장하고 있다(김수행, ‘청소년을 위한 국부론’, 두리미디어, 2010). 스미스는 경제 활동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 자체가 도덕의 한 형태라고 확신했다. 그는 독점 기업가에 반대하고 소비자의 이익을 옹호했으며 소비자의 욕구, 생산, 시장 경쟁, 그리고 노동 분업이 국가의 부를 창출하는 동력이라고 보았다. 그는 소위 ‘womb-to-tomb social security’(요람에서 무덤까지의 사회보장)를 주장한 사람이다.

 

스미스는 또 다른 저서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에서 인간은 자기애를 가지고 있다는 것, 자기애는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를 기본으로 한다는 점에서 이기주의와 다르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 책에 나오는 3개의 키워드가 스미스의 인간관을 집약한다. ‘공감’(sympathy), ‘양심’(conscience), 그리고 자기이익’(self-interest)이 그것이다. 현재 에든버러에 있는 그의 묘비에는 그의 뜻에 따라 여기에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의 저자가 묻혀 있다.”(Here are deposited the remains of ADAM SMITH. Author of 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and Wealth of Nations)라고 새겨져 있을 정도다.

 

비문에서도 도덕감정론을 앞세운 것은 그만큼 경제에 있어서 도덕감정을 중시했다는 이야기다그는 도덕 감정론에서 이 세상의 모든 노고와 소란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가? 탐욕과 야망의 목표, 부와 권력과 명성을 추구하는 목표는 무엇인가?”라고 자문한다. 이에 대해 국부론에서 부와 영광을 쟁취하기 위한 모든 추악한 소동은 국민(nations)의 복지에 기여할 때만 궁극적인 정당성을 갖는다.”고 자답한다.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 약한 자와 강한 자 사이의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상황에서는 예외 없이 가난하고 약한 자의 편에 선다. “다양한 영역에서 일하는 하인, 노동자, 직공 등은 모든 국가에서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사회 구성원 대다수가 가난하고 비참한 삶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절대로 번영을 누리거나 행복할 수 없다.” 따라서 스미스가 강조한 ‘self-interest’돈벌이에 대한 관심’, ‘돈을 벌려는 의지’, ‘돈을 벌려는 욕망등으로 번역할 수도 있다고 본다.

 

한편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an invisible hand)은 시장의 가격결정원리가 아닌 데도 우리의 초‧‧‧대학에서는 가격결정원리라고 가르친다. 교사, 교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한다. 교과서와 참고서에도 그렇게 쓰여있다.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시절 강연을 할 때면 거의 언제나 자본주의를 공격하면서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비판했다.

 

스미스의 ‘an invisible hand’는 그의 저작들에 딱 세 번 나오는 구절이다. ‘국부론과 도덕감정론(The Theory of Moral Sentiments, 1759)에서 각각 한 번씩 나온다. 그리고 1758년 이전에 저술한 것으로 보이는 천문학사(The History of Astronomy)에서는 변형된 형태로 ‘the invisible hand of Jupiter’(주피터 의 보이지 않는 손)라는 표현이 나온다국부론에 나와 있는 이 대목은 <...led by an invisible hand to promote an end which was no part of his intention.>이다. 이를 옮겨보면 “ ‘보이지 않는 손의 인도를 받아서 원래 의도하지 않았던 목표달성을 증진할 수 있게 된다가 된다. 아담 스미스의 이 말은 누구나 자기 자신의 안전(security)과 이익(interest)을 추구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결국 사회 전체의 이익이 늘어난다는 주장이었다.

 

아담 스미스는 사람들의 자기이익(self-interest) 추구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우리가 저녁식사를 즐길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善意(자비심, 박애심)덕분이 아니라 그들의 그들의 자기이익 추구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생산물의 가치가 극대화되는 방향으로 자신의 자원을 활용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공익을 증진하려고 의도하지 않으며 또 얼마나 증대시킬 수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그는 단지 자신의 안전과 이익을 위하여 행동할 뿐이다. 그러나 이렇게 행동하는 가운데 보이지 않는 손의 인도를 받아서 원래 의도하지 않았던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열심히 추구하는 가운데서 사회나 국가전체의 이익을 증대시킨다.”

 

이와 같이 아담 스미스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처지를 개선하려고 하는 자연스런 노력인 자기이익에 따라 행동하면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모든 경제활동이 조정되고 개인과 사회의 예정조화가 실현된다고 하는 낙관론을 편 것이다아담 스미스는 정부정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여러분은 선의의 법령과 규제가 경제에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간섭하지 말고 그대로 내버려두십시오. ‘자기이익추구라는 기름이 경제라는 기어’(gear)를 거의 기적에 가까울 정도로 잘 돌아가게 할 것입니다.”

 

결국 국민의 부를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기의 본성을 자유롭고 안전하게 발휘하도록 해주는 일밖에는 아무 것도 필요 없다는 것이 그의 저서 국부론의 핵심인 것이다. 정부는 국토를 방위하고 정의롭고 평등한 법질서를 유지하며 개인이 할 수 없는 공공사업을 수행하는 일에만 전념하고 그 나머지의 분야는 모두 개인에게 맡겨두라는 것이다.

 

김수행 교수는 김수행, 자본론으로 한국 경제를 말하다’(시대의 창, 2009)에서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을 시장만능 또는 자유방임의 이론으로 해석하는 것은 그를 모독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독점과 시장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모든 걸 시장에 맡겨야 한다는 등의 주장을 애덤 스미스가 한 적이 없는 데도 주류 경제학자들이 입맛에 맞게 애덤 스미스를 왜곡했다고 주장했다.

 

일생을 마르크스 연구에 바쳐온 고(김수행 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그는 경제학의 비주류인 마르크스 경제학 전문가이지만 아담스미스 경제 연구가이기도 하다역서에 자본론(비봉출판사), 국부론(비봉출판사), 청소년을 위한 자본론(두리미디어), 청소년을 위한 국부론(두리미디어등이 있다.

기사입력 : 2019-09-23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카카오스토리 Share on Google+ naver URL복사
뒤로가기 홈으로

인기뉴스

URL 복사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