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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석음·악함·추함은 그 뿌리가 같다

"악을 통해 행복할 수도 성공할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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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인코리아 편집인/바른생각 네티즌 논객 2018-07-15

 

어리석음과 악은 그 뿌리가 같다(바른생각 네티즌 논객)

 

러시아 민화를 바탕으로 한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에서 이반은 바보다. 하지만 심성이 착하고 올곧아 악마의 유혹에 넘어가지 아니하고 오히려 속일 줄 모르고 믿는 심성으로 악마를 퇴치한다. 약아빠진 사람들은 악마에게 유혹되어 신세 망치지만 이반은 악마의 유혹에서 자유롭다. 결과적으로 보면 바보 이반이 현명한 것이고 약아빠지게 세상을 살려고 하는 사람들이 어리석은 것이다.

 

바보 이반은 상대가 악마인지 천사인지 구별할 줄 모르는 바보다. 하지만 자기의 행동 기준이 이미 분명하기 때문에 악마의 함정에 빠지지 않는다. 이처럼 현명한 행동은 지능과 상관이 없고 남에게 상관되지 않는다. 즉 현명하고 착한 행동의 기준은 절대적인 것이다. 현명함은 더 많은 경험과 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내면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면 된다. 못 배우고 몰라서 사기 당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선량한 사람은 못 배우고 세상 물정 몰라도 사기 당하지 않는다. 사기 당하는 것은 자기 욕심에 눈이 멀어 스스로를 속이기 때문이다.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나를 흔히 자아(自我)라고 한다. 그런데 자아는 나의 본질이 아니다. 실체는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나는 나의 본색을 직접 인식할 수 없다. 만약 실체를 그대로 인식할 수 있다면 모르는 게 없어야 하고 오류와 어리석음도 없어야 한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가정이다. 이렇듯 내가 나라고 생각하는 그것은 본래의 나가 아니다. 세상에 비춰진 나를 자의적으로 구성한 모양이 자아다. 따라서 자아의 모습은 개인의 욕망과 경험 지식에 많은 부분 종속된다.

 

개념적으로(간접적 혹은 논리적으로) 파악할 때, 자아는 내 실체가 아니라고 판단하는 능력을 정신, 영혼, 이성이라고 한다. 데카르트의 존재 증명과 같은 논리로, 나의 존재를 의심하는 나는 확실하게 존재한다. 이렇게 의심하고 판단할 수 있는 내 생각은 확실한 존재인데, 바로 이것을 정신, 영혼, 이성이라고 부른다. 정신, 이성은 확실하게 존재할 뿐만 아니라, 인간이 아는 한 어떤 식으로든 분해가 불가능하고 달리 해석할 수도 없으므로 이것을 우리는 실체라고 말할 수 있고 자연 그대로의 것이다. 이것이 자연 그대로일진대 이것의 목적은 자연이 존재하는 이유와 같다. 정신, 이성은 자연의 존재 이유가 일치하므로 완전히 선하고 오류가 없다. 오류란 자연의 이치에서 어긋나는 것인데 정신, 이성은 자연의 목적과 일치하므로 오류가 있을 수 없다. (헤겔의 절대정신과 동일하다.)

 

정신, 이성은 완전히 선하지만, 자아는 악할 수 있다. 자아는 실체가 아니기 때문에 여기에 오류가 섞여 있는데 그것이 강화되면 그게 바로 악이다. 나라고 생각하는 나에 머물면 신념화된 악을 행할 수 있다. 그렇게 되는 까닭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게 아니라 삐딱하게 바라보고 자기 입맛에 맞게 세상을 변조하므로 실제 세상과 점점 더 멀어지고 그렇게 행동하기 때문이다. 순리에서 멀어지는 게 바로 악이다.

 

바보 이반은 자기가 잘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므로, 즉 자아(상대적 가치)에 집착하지 않아 이성(절대적 기준)이 정상 작동하므로, 세상을 삐딱하게 바라 볼 메카니즘이 없다. 따라서 오류에서 자유롭다. 악을 행하는 사람들의 근저에는 반드시 아집이 존재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아에 집착해서 세상을 바라보므로 자신과 세상 사이에 메꿀 수 없는 격차가 발생하고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실제 세상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게 되는데 그게 바로 악한 행동이다.

 

문학적으로, ‘영혼을 팔아버린다는 표현이 있는데, 영혼을 팔아버리는 주체가 자아다. 정신줄을 놓는다는 표현도 있는데, 정신줄을 놓는 주체가 자아다. 그건 눈 앞의 이익에 눈이 멀거나 당장 괴로우니까 삿됨을 받아들이는 것인데, 하지만 삿됨으로 일을 성취하고 나를 실현하는 건 불가능하다. 악마에게 유혹되는 주체가 자아다. 정신, 영혼, 이성은 악마에게 유혹되지 않는다. 정신과 이성은 순전히 선한 것이고 그 본질은 신과 동격이다. 정신 차리라는 말이 있다. 정신을 되찾으려면 나라고 생각하는 나를 깨야 한다. 나라고 생각하는 나는 진정한 내가 아니다. 나라고 생각하는 나를 깨면 세상의 아름다움이 비로소 보인다. 진짜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면 옳고 그름이 분명해진다. 바보 이반은 진짜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사람이다. 그게 현명함이다.

 

아름다움을 분별하는 것은 오직 이성이 하는 일이다. 자아(감성)가 느끼는 건 아름다움이 아닐 수 있다. 자아는 추한 것을 아름답다고 착각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자기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여기는 것을 지레 아름답다고 규정해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자연의 법칙은, 자연의 이치에 맞는 것만 아름답고 자연의 이치에 어긋나는 것은 추하다. 지 마음대로 아름다움과 추함을 뒤바꿀 순 없다. 아름다운 건 객관적인 것이지 주관적인 게 아니다. 가령 예술은 반드시 객관적으로 아름다운 것이어야 한다. 이 이치를 무시하면 세상이 혼란해진다. 작금의 세상이 그렇다.

 

제 눈에 안경이라고 하지만 안경은 과학적인 원리로 맞추는 것이지. 제멋대로 맞추는 게 아니다. 말인 즉슨 제 눈에 안경이라는 것도 객관적이 수치여야 한다. 주관적인 아름다움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제 눈에 안경이듯이, 주관적인 아름다움조차 객관적인 값이어야 그것이 주관적으로 아름다운 것이다. 객관적으로 가치가 없는 것은 주관적으로 아름다울 수 없다. 주관적으로 세상을 재단한다고 해서 세상이 그렇게 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아름다움은 철저하게 객관적인 것이다. 아름다움을 주관적으로 변형시키는 것은 자아가 제멋대로 세상을 해석해버리는 것인데 이것은 오류다. 오류로부터 만족한다거나 행복할 수 있다는 발상은 불가능하다. 자연은 그렇게 생겨먹지 않았다.

 

제멋대로 아름답다고 규정한들 그것이 아름다움이 아닐진대, 그것으로부터 반드시 낭패를 당하게 된다. 추한 것을 통해 행복해질 순 없는 일이다. 악을 통해 행복할 수 없고 성공할 수도 없다. 반드시 심판이 있다. 그 심판은 절대적인 기준에 따라 가름된다. 아름다움을 멀리하고 추한 것을 가까이 하는 것은 이미 마음이 삿되기 때문인데 세상에 추함이 넘쳐나면 그 세상은 오래가지 않는다. 이건 우주의 법칙이므로 여기에서 예외적인 존재는 없다. 작금 우리나라와 세계를 보더라도 추함이 기세를 더하고 있으니 매우 위험한 지경에 처해 있다.

 

추한 것을 좋아하는 게 어리석음인데 이러한 어리석음이 추한 것을 아름답다 착각하여 칭송함으로써 추한 것이 권세를 갖게 되면 그게 바로 악마다. 악마가 저 혼자 악마가 될 순 없다. 사람들이 거짓에 속아 추한 것을 아름답다 추종하기 때문에 악마가 형성된다. 악마가 창궐하는 세상은 보편적으로 타락해있다는, 오류가 넘쳐난다는, 말이니 오래 갈 수 없고 반드시 순리에 따라 정화된다

 

▲ 어리석고 추잡하고 악덕스런 좌익정치꾼들

기사입력 : 2018-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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