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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성·김정일, 비핵화 유언한 적 없다

서옥식, "김일성의 비핵화 유훈은 처음부터 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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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환 편집인 2018-03-07

김일성 김정일은 비핵화 유언한 적 없다

서옥식 박사, '김일성의 비핵화 유훈은 처음부터 사기' 지적

 

이런 사기를 믿었던 노무현정부와 믿으려는 문재인 정부 한심

김일성 교시문: “조국통일을 위해서 핵은 필수적

김정일 지시문: “조국통일은 핵에서 시작해 핵으로 완성한다

북한의 비핵화는 핵폐기’ 아닌 한반도 비핵지대화’ 의미

비핵화 핵심목적은 주한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와해 공작

체제안전보장은 외부에서 도울 수 없다

노무현정부는 이런 북한 주장을 미국에게 들어주라고 했다

 

  

김정일과 면담을 한 대북특사단이 서울로 돌아와 언론브리핑을 통해 북한 김정은이 비핵화가 선대(先代)의 유훈이라며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했다고 말했다. 특사단은 북측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를 분명히 하였으며 북한에 대한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북한의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는 점을 명백히 했다고 전했다. 북측은 또 핵무기는 물론 재래식 무기를 남측을 향해 사용하지 않을 것임을 확약했다고 소개했다. “(김정은이)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고, 선대의 유훈에 변함이 없다는 것을 분명히 밝혔다고 덧붙였다.

 

김정은의 말을 곧이 곧대로 듣고와서 브리핑한 대북특사단이나 그걸 그대로 경천동지(驚天動地)할 뉴스처럼 아무 비판이나 분석없이 앵무새처럼 읊어대는 대부분의 언론이 한심 하기는 다를 바가 없다. 지금까지 북한이 외쳐왔던 서울 불바다청와대 초토화가 하루 아침에 사라졌다는 얘기로 들린다.

   

그러나 비핵화가 선대의 유훈이란 말은 완전 사기(詐欺)이다. 이런 것을 한국 특사단이 대단한 것처럼 기자들 앞에 소개했다는 것 자체가 세계가 웃을 일이다. 김일성은 통일을 위해 핵은 필수적이이라고 했고, 김정일은 통일은 핵에서 시작해 핵으로 마무리해야 한다는 어록을 남겼다. 김일성과 김일성은 북한핵을 폐기하라는 유언을 남긴 적이 결코 없다. 과거 김일성이 남한을 향해, 그리고 외국 언론인나 인사들에게 한 비핵화언급은 모조리 가식이었다.

 

특사단의 언급은 2005617일 노무현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방북한 당시 정동영 통일부장관의 브리핑 내용과 닮았다. 정 장관은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이 면담에서 한반도 비핵화는 김일성 주석의 유훈이며, 비핵화는 여전히 유효하다.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 우리는 핵무기를 단 한 개도 가져야 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해찬 당시 총리는 북한의 국가운영원리는 김 주석의 유훈통치라며 의미를 부여했다. 노무현 당시 대통령도 엿새 뒤 북한 대표단을 접견한 자리에서 김 위원장이 한반도 비핵화는 김 주석의 유훈이라고 한 데 유의한다고 무게를 실었다.

 

비핵화가 선대의 유훈이라던 북한은 스스로 가입해 서명한 핵관련 국제협약 즉 NPT(핵확산금지조약, 1985.12.12가입),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1991.12.31서명), 국제원자력기구(IAEA)핵안전협정(1992.1.30서명),북미제네바기본합의문(1994.10.21서명),9.19공동성명(2005.9.19서명)을 탈퇴 또는 위반하면서 20061091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이후에도 핵폐기를 다짐했던 2.13합의(2007.2.13), 10.3합의(2007.10.3), 2.29합의(2012.2.29발표)등을 위반해 2016년 까지 6차례나 핵실험을 단행했고 2012413일에는 헌법에 통해 핵보유국임을 명시했다.

 

연합뉴스 편집국장출신의 북한문제연구가인 서옥식 박사(정치학)에 따르면, 김일성의 비핵화 유훈이란 지난 1990년대 초 남북기본합의서 협상 때 북한이 제기한 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를 말한다.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는 실제로는 비핵화가 아니라 비핵지대화(非核地帶化)’를 의미한다. ‘비핵화비핵지대화는 서로 다른, 상호 모순되는 개념이다. ‘비핵화비핵국가로 하여금 핵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고 비핵지대화핵보유국으로 하여금 특정지역 안에서는 핵을 폐기하거나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결국, 북한의 입장은 말로는 비핵화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북한의 핵을 포기하기 전에 먼저 미국을 상대로 조선반도의 비핵지대화를 이야기하겠다는 것이 된다.

 

이에 따라 당시 북한은 핵무기 탑재가 가능한 비행기·함선의 한반도 통과·착륙·방문 금지, 핵우산 보장조약 체결 금지, 핵무기 동원 군사훈련 금지 등을 요구했다. 이 기준에 따르면, 미군의 한반도 출입은 물론 한·미 상호방위조약과 군사연습까지 금지된다. 즉 한·미 동맹의 와해가 비핵지대화의 핵심 목적이었다. 이처럼 북한이 주장하는 비핵화는 미군 철수와 한미동맹 해체를 전제로 하는 것이다. 미군이 1991년 한반도 전술핵을 모두 철거한 뒤에는 미 핵우산에서 남한이 이탈해야 한다는 전제를 깐다.

 

반면에 한국은 주한미군 문제는 남북간 논의사항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 남북한 쌍방의 핵무기 개발을 금지하는 비핵화를 제안했다. 19911231일 북한이 비핵지대화 주장을 접고 한국의 비핵화 제안을 받아들여 비핵화공동선언에 합의한 것은 당시 동구 공산주의의 붕괴로 어려움에 처한 김일성이 남북대화에서 활로를 찾으려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은 비핵화공동선언 체결 직후부터 다시 비핵지대화의 내용을 주장하기 시작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치적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일시적으로 남한의 비핵화를 모자로 쓰긴 했지만 얼굴은 그대로 비핵지대화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정동영장관이나 노대통령은 한반도의 비핵화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세히 모르고 김정일 위원장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것 아니냐는 지적이 없지 않았다. 노무현 대통령은 북한이 최초의 핵실험을 감행한지 1년이 지난 20071011일 청와대에 열린 ‘2007 남북정상회담관련기자회견에서 김 위원장이 우리는 핵무기를 가질 의사가 없다. (김일성 주석의) 유훈(遺訓)이다라고 했다고 전함으로써, 마치 북의 비핵화 의지를 확인이라도 한 것처럼 말했다.

 

우리 사회의 좌파 정치권과 노동운동권, 주사파계열, 일부 386세대, 소위 진보지식인들은 미국이 북한에 단호한 정책을 펼침에 따라 북한이 대응차원에서 핵을 개발한 것이라는 선전적 논리를 펴고 있으나 북한의 본격적인 핵무기 개발은 클린턴 정부 이전부터 진행된 것이다. 북한 핵개발은 1965년부터 소련으로부터 들여온 연구용 핵원자로를 가동하면서 시작됐고, 1987년부터는 영변의 5MW 흑연감속로에서 본격적으로 핵물질을 추출해왔다. , 북한 핵개발은 미국의 대북정책과는 상관없이 독자적으로 대한민국에 군사적 우위를 유지하고 위협할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하자는 차원, 나아가 통일까지 염두에 둔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다. 물론 스스로의 힘으로 체제를 수호하겠다는 목적도 겸하고 있다.

 

19873월초 드러난 핵개발에 대한 김일성의 비밀 교시와 김정일의 비밀 지시문에 의하면, 통일을 위해 핵사용이 불가피함을 역설하고 있다. 김일성은 교시에서 조국통일을 위해서 핵은 필수적이라고 언급했으며 김정일은 핵개발에서 조국통일을 시작하고 핵으로 조국통일을 총화(완성)하려한다고 주장했다. 김일성은 특히 1987317일 영변 핵개발단지 분강지구 문화회관에서 개최된 핵개발분야 과학기술자대회 경축공연에서 교시를 통해 통일을 위해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지면, 이는 핵전쟁이 될 것이라는 취지의 연설을 했다.

 

김일성은 격려사에서 인민경제 뿐만아니라 조국통일을 위해서도 핵개발은 우리의 필수적 과제입니다... 내게는 세가지 소원이 있습니다. 첫째는 핵개발을 완성하는 것이며 그 다음엔 인민생활 향상과 조국통일입니다. 무엇보다 우라늄 농축기를 주체화하야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언급은 북한이 핵을 통일용 즉, 남침 수단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는 것을 분명히 한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내용들은 영변 핵단지에서 근무하다 중국을 통해 1994년 남한으로 입국한 김대호(金大虎)씨의 저서 <영변에 약산 진달래 꽃(하권), 서울: 예음, 1997, p. 158/ 서옥식 편저 키포인트 국제정치학, 성결대 교양교직부, pp.335-336>을 통해서 상세히 밝혀졌다.

 

김정일도 핵개발에 관한 지시문에서 위대한 수령님 시대에 반드시 핵개발을 완성하려고 합니다. 수령님대에 핵개발을 완성하는 것, 이것은 나의 단호한 결심입니다. 우리는 핵개발에서 조국통일을 시작하고 핵으로 조국통일을 총화하려고 합니다고 말했다(김대호, 위의 책, p.159/서옥식 편저 키포인트 국제정치학, 성결대 교양교직부, pp.335-336)

 

김씨에 따르면 1987년 김일성의 생일(415)을 앞두고 북한의 기업소 문화회관에서는 직장별로 경축예술공연이 열렸으며 영변 핵개발단지 분강지구 문화회관에서도 317일 김일성과 김정일이 참석한 가운데 이 같은 공연이 성대히 개최됐다.

 

이 공연에는 김씨가 근무하고 있던 우라늄정련공장인 4월기업소를 비롯 인근의 3공병(핵개발부대산하 43여단(분강핵단지 지하공장 건설), 12월기업소(5MW핵발전소 또는 재처리기업소로 불림), 8월기업소(핵연료봉생산공장), 66건설사업소(분강 핵단지 지상공장건설), 핵물리대학 등이 단위별로 참가했다. 북한의 핵개발 공장들은 명칭이 모두 위장돼 있다. 김씨는 핵개발을 주제로 한 공연이어서 4월기업소 공연책임자로서 자신이 공연 대본을 직접 쓰기 위해 당의 핵개발 사상과 의지를 알아보는 과정에서 기업소 당 간부로부터 핵개발에 관한 김일성의 교시와 김정일의 지시문을 전달받아 읽어 볼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김씨는 교시와 지시문이 비밀문건이기 때문에 이를 열람할 때 서약서까지 쓰고 지장까지 찍었다고 밝혔다.

 

김씨는 이에 따라 공연대본의 주제를 <핵으로 통일의 대문을 열자>로 정하고 대본을 합창 등으로 연습할 때에 조국통일을 위해 핵개발은 필수적이라고 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와 핵개발로서 조국통일을 시작하고 핵으로 조국통일을 총화하겠다고 하신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말씀을 인용하는 부분에서는 목소리를 띄우지 멀고 푹 깔아서 장중하면서도 그 의지가 잘 표현되도록 명심해서 연습하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1987년은 북한이 4KW용량의 연구용 원자로를 완공한 해이다. 김일성은 1980년대 들어 비밀리에 원폭을 개발하던 파키스탄에 기술자들을 보내 원자력 기술을 익히는 등 약 3천여명의 연구 인력을 투입하여 내밀하게 핵 개발을 추진해왔다. 그 결과 몇 차례 개량을 거쳐 이제 5MW급 원자로를 가동하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은 그러나 그 후 핵 개발을 집요하게 추적해온 미국에 딴청을 부렸다. “미국은 핵 개발의 죄를 뒤집어씌워 우리(북한)를 압살하려 한다” “미국이 핵무기를 1만개 이상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 때문에 한 두개 만들어 세상 사람들을 웃기겠는가” “우리는 핵무기를 만들 필요도 없고 능력도 없다우리가 핵무기를 만들어 무엇 하겠는가” “있지도 않은 북의 핵 개발 의혹을 들고 나온 것은 미국이다.” 그야말로 말의 성찬이었다.

    

남측을 공격하지 않기로 약속했다고(?) 서울 워싱턴 도쿄를 타격목표로 하고 있는 북한 핵미사 일 선전화(노동신문)

   

김일성은 1994413일 쿠바 프렌사 라티나 통신사 사장과 회견에서 우리가 자체의 힘과 기술로 핵시설을 건설한 것은 나라의 동력 기지를 더욱 강화하려는 데 목적이 있으며 우리의 핵 활동은 어디까지나 평화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핵무기를 개발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는 것을 한두 번만 천명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는 핵무기를 개발할 필요도 없고 설사 한 두개의 핵무기를 만든대야 그것은 아무 소용도 없습니다. 우리 공화국정부는 일관하게 조선반도의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김일성은 동년 417일 미국 CNN과 회견에서는 지금 미국이 핵문제를 걸고 우리에 대한 압력소동을 벌이고 있으나 그것은 아무런 근거도 없습니다. 다 아는 바와 같이 우리 공화국은 비핵, 평화애호 국가입니다. 우리에게는 핵무기가 없으며 그것을 만들 의사도 능력도 없습니다. 핵무기는 지금도 우리에게 없지만 앞으로도 없을 것입니다. 조선반도를 비핵화하는 것은 우리 공화국정부의 일관한 정책입니다. 우리는 조선반도를 비핵화하기 위하여 계속 꾸준히 노력할 것입니다라고 했다.

 

그는 이어 동년 630에는 북한을 방문한 벨기에 노동당 중앙위원장과 한 담화에서 그저께 판문점에서 우리 측에서는 최고인민회의 통일정책위원회 위원장이 나가고 남측에서는 부총리가 나와 북남 최고위급회담을 725일부터 평양에서 하기로 합의하였습니다. 회담에서는 별다른 것을 논의할 것이 없습니다. 이미 북과 남이 화해와 불가침에 관한 합의서도 채택하였고 조선반도의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도 채택한 만큼 그런 것을 다 실현하도록 하면 됩니다. 우리는 회담에서 모든 문제를 다 좋게 해결하려고 합니다고 강조했다.

 

김대호씨의 이 같은 진술들은 그가 훗날 저술한 또 다른 책 <核工場 眞實>(일본 德問書店, 2003)과 언론 인터뷰에서도 그대로 나타나 있다. 김씨는 이 책에서 김일성과 김정일이 통일을 위해 핵이 필요함을 역설했다고 쓰고 있다. 북한 원자력공업부 남천화학연합기업소 산하 핵폐기물 처리회사 부사장을 지낸 김씨는 또 2006711일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김일성은 <핵개발을 해야 열강을 상대로 이길 수 있다는 다소 민족주의적 관점>이었지만 김정일은 <핵개발로 조국통일을 시작하고 총화(마무리)한다는 호전적 입장> 이라고 말했다.

 

김씨에 따르면, 김정일은 자신을 핵개발의 총사령관으로 자처하는 등 핵개발에 올인하면서 스스로 노동당 131 지도국(핵개발 담당기구)은 나의 친위대다. 나는 핵개발의 총사령관이라고 공언할 정도로 핵개발에 적극적 이었다는 것이다. 1985-1987년 영변 핵 단지인 ‘5기계공업총국’( 분강지구)4월기업소에서 근무했으며 1992년부터는 서해지구 채취대장으로 ‘710호 자금’(핵개발자금)을 마련하다 19944월 중국을 통해 남한으로 입국한 김씨는 북한이 1989년 무기급 플루토늄을 추출했고 1992년 저온에서 핵분열을 일으킬 수 있는 저폭뇌관 기폭장치 개발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한편 북한이 남한과의 전쟁에서 핵을 사용할 것으로 전망한 외국의 정부 기록도 있다. 1976216일자 헝가리 외무부의 기록은 당시 헝가리 주재 북한대사관의 오송권 3등 서기관과 이운기 무관보의 말을 인용, “코리아는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일될 수 없다. 그들은(북한은) 전쟁할 준비가 돼 있다. 전쟁이 벌어진다면 재래식 무기보다는 핵무기 전쟁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5517일자로 공개된 헝가리정부 외교문서에 의하면 이 기록은 이어 지금쯤이면 북한도 서울과 도쿄, 나가사키 같은 남한과 일본의 대도시나 오키나와 같은 군사기지를 목표로 하는 핵탄두와 이를 탑재할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고 돼있다. 이 기록은 “ ‘북한군이 핵탄두를 중국으로부터 받았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자체 실험을 통해 독자적으로 개발해 제조한 것이라고 대답했다고 기술돼 있다.

 

평화협정 체결과 한미동맹 와해는 북한에 있어 정권의 명운이 걸려 있는 문제이다. 전 한반도의 적화달성을 가늠하는 관건이기 때문이다. 북한은 지금까지 핵무기를 자산으로 삼아 비핵화란 기만전술로 한국과 미국을 흔들었다.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이런 북한의 기만전술을 받아 주라고 미국에 요구했다.

 

  

기사입력 : 2018-0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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