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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남침’ 빠진 ‘역사교과서 집필기준’

‘남침’이란 침략주체 설명 없이‘6·25전쟁’으로 바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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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환 편집인 2018-02-05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역사교과서 집필試案 논란

유엔군참전 인천상륙작전 정정협정 한미동맹도 몽땅 빠져

새마을운동 중동건설 외환위기극복도 삭제

 

 

·고교생들이 2020년부터 배울 역사 교과서 집필 기준시안(試案)자유민주주의민주주의, ‘대한민국 수립대한민국 정부 수립으로 바뀌어 논란이 일고 있는 가운데 6·25전쟁이 북한 정권의 전면적 남침으로 발발했다는 표현이 사라진 것으로 확인됐다.

 

동아일보는 5자사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이 공개한 ·고등학교 역사교과서 집필 기준과 기존의 역사·한국사 교육과정을 자체 분석한 결과 기존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북한 정권의 전면적 남침으로 발발한 6·25전쟁이란 표현이 침략 주체에 대한 설명 없이 ‘6·25전쟁으로 바뀌어 있었다고 보도했다동아일보는 통상 6·25전쟁은 북한군의 남침으로 발발한 전쟁이라는 것이 주류 역사학계의 정설이다이지만 수정주의자로 분류되는 일부 역사학자는 6·25전쟁에 대해 침략 주체를 따지는 게 무의미한 내전’ ‘남측이 북침의 빌미를 제공한 전쟁등의 주장을 펴 왔다고 전했다.

 

6·25전쟁의 남침 여부에 대한 기술은 7차 교육과정(1997)에는 명시돼 있었으나, 2007과 2009 개정 교육과정에서 사라졌고,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다시 부활한 바 있다.

 

동아일보는 이와 함께 새 집필기준 시안에서는 한미 관계나 경제 성장과 관련한 학습요소가 축소된 것도 눈에 띈다면서 군사·외교 분야에선 유엔군 참전 인천상륙작전 중국군 참전 한미상호방위조약 정전협정 등이, 경제 분야에서는 수출제일주의 정책 새마을운동 중동건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외환위기 극복 등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내용들이 삭제됐다고 전했다.

 

동아일보는 이어 그 대신 새 집필기준은 경제성장은 정부와 국민이 이룬 성취라는 일국적 시각에 가두지 말고 세계경제 변동 과정에서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지도 파악한다며 세계적인 경제 호황에 따른 결과로 설명했다고 전하고 경제성장의 부정적 측면으로는 정경 유착을 새로운 학습요소로 포함시켰다고 했다.

 

박근혜 정부는 중·고교 역사·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바꾸는 방안을 추진했다가 반대에 부딪혀 지난해 1월 국·검정 혼용 체제를 택하기로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취임 직후 예전의 검정 체제로 전환하기로 해 교육부는 새 집필기준에 따른 교과서를 만들어 2020학년부터 중고교 학생들이 쓸 예정이다.

 

동아일보는 끝으로 교육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 “교육과정평가원 시안은 확정된 것이 아니다라고 전했다. 이 신문은 교육부측이 의견 수렴을 하고 있으며 향후 교육과정 심의회와 운영위원회 등의 과정을 거쳐 집필기준을 상반기에 확정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언론인 출신의 북한문제연구가인 서옥식 박사(정치학)“6·25전쟁은 우리 역사상 가장 비참한 동족상잔의 비극이었으며, 자유-공산 양대 세력의 세계적인 전쟁이었다고 전제하고 김일성, 스탈린, 마오쩌둥(毛澤東) 3자가 공모해 공산주의 영향력을 동북아에서 확대하기 위해 일으킨 남침전쟁이자 국제전이었다고 말했다.

 

“6·25전쟁은 유엔의 집단안보가 적용된 최초의 사례입니다. 당시 유엔에 가입돼 있던 나라가 93개국인데 6·25전쟁에 직간접으로 개입한 나라가 70개국입니다. 대한민국측에 섰던 나라가 63개국, 북한측에 섰던 나라가 7개국입니다. 그래서 ‘a little World War’로까지 불립니다. 군사적으로 볼 때 6·25전쟁은 동서 냉전기 최초의 열전(hot war)이며, 미국 건국이래 200여 참전 사례 중 최초의 ()선전포고전쟁입니다. 또한 전장(戰場)이 한반도에 극한됐고 목표가 공산주의 팽창 봉쇄에 있었다는 점에서 ‘20세기 미국 최초의 제한전이란 평가를 받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의 전술과 전략은 그들의 시조 카를 마르크스가 1848년 공산당선언에서 설파한 것처럼 계급혁명과 폭력혁명을 통해 세상을 공산주의로 바꾸자는 것으로 정리된다. 6·25전쟁은 이래서 민족사뿐 아니라 세계사적으로도 커다란 의미를 갖는다. 공산당선언이후 최초로, 그리고 냉전의 시작과 함께 드러난 공산주의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준 기념비적인 사건인 것이다. 그리고 자유민주주의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해준 세계사적 이정표이다. 미국이 개입하지 않았다면 우리는 이미 적화됐을 것이다.

 

1950625일부터 1953727일 휴전조인까지 남북한을 통틀어 5백여만의 사상자와 1천만명이 넘는 이산가족을 만들어 냈다. 그 경제적 손실은 전 국토가 초토화되면서 대한민국은 가히 계수로 판단하기 어려운 상태인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미국은 195074일 스미스 대대가 참전하면서부터 휴전협정이 조인될 때까지 3년간 연인원 175만 명의 장병이 참전, 54246명이 젊은 목숨을 바쳤고 103284명이 부상했으며, 아직도 8천여명의 실종자를 남기고 있다.

 

당시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다시는 이러한 식의 전쟁은 치르지 않겠다는 뜻의 ‘Never again Korea’를 토로했으며 휴전 후에도 아물지 않는 상처를 달래기 위해 한국전을 아예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라고 까지 불렀다. 그러나 한국전쟁은 결코 잊혀진 전쟁이 아니다. 남북한은 지금도 전쟁을 일시적으로 정지하고 있는 상황 즉, ‘기술적으로 전쟁상태(technically at a state of war)'에 있다.

 

서옥식 박사는 주지하다시피 6·25전쟁은 김일성이 스탈린과 마오쩌둥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치밀하게 준비된남침이었다면서 김일성은 1950330일부터 425일까지 부수상겸 외상 박헌영과 함께 모스크바를 방문, 스탈린과 남침계획을 최종적으로 논의했다. 이어 김일성은 513일에 베이징(北京)을 가서 다음날 모택동의 동의를 얻었다. 이같은 사실들은 6·25전쟁이 내전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6·25전쟁은 소련, 중국, 북한이 연대하고 공조해 일으킨 전쟁이다. 이러한 사실들은 냉전이 붕괴되면서 공개된 소련측의 문서와 증언을 통해 전 세계에 다 알려진 사실이다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스탈린과 김일성의 남침 목표는 신생 대한민국을 붕괴시켜서 스탈린이 대리 통치하는 조선인민공화국에 편입하는 것이었다. 공산주의자들은 6·25전쟁 이전부터 대한민국의 건국을 저지해왔다. 1946년의 ‘2·7 구국투쟁대구 폭동’, 1948년의 제주4·3폭동여수·순천 반란사건에 이르기까지 무장폭동에 기반한 대한민국 건국저지 및 공산화 작업은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무장폭동으로 대한민국의 건국을 저지하지 못하자 마지막 수단으로 나온 것이 바로 전면 남침전쟁이었다.

 

서옥식 박사는 그럼에도 진보의 허울을 쓰고 6·25를 내전(civil war, internal war)이니, 민족해방전쟁이니, 통일전쟁이니, 혁명세력과 반혁명세력 간의 전쟁이니 하면서 대한민국을 지킨 세력을 반혁명세력으로 몰아가고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린 16개 우방국을 내전에 개입한 제국주의세력으로 매도하는 세력이 날뛰는 곳이 오늘의 대한민국이다이라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실패한 통일전쟁’, 노무현 전대통령은 내전이라고 규정했다고 상기시켰다.

  

문재인은 2017년 현충일 추념사에서 6·25란 표현 자체를 쓰지도 않았고 피흘려 우리를 도운 미군과 유엔군에 대해 아무런 언급도하지 않았다. 현충일은 애국선열과 국군장병을 포함, 대한민국을 위해 목숨을 사람들의 넋을 넋을 위로하고, 충절을 추모하기 위하여 정한 국가기념일이다. 문 대통령은 다만 6·25 67주년을 앞두고 2017723일 오후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국군 및 유엔군 참전 유공자 위로연에 참석,“참전용사 덕분에 피란민 아들이 대통령이 됐다고 말했다. [조영환 편집인]

 

 

기사입력 : 2018-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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