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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익환은 숙청당해 화병으로 죽었다고?

문익환은 혹시 은밀하게 독살되진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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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환 편집인 2011-09-18


▲ 김일성-김정일에 의해 숙청당한 문익환의 아들 문성근이 김정일의 환대를 받았단 말인가?

1989년 밀입북해 김일성을 만난 뒤에 남한사회에 종북좌익세력 구축의 대부가 되었던 문익환 목사가 ‘북한(김일성)으로부터 버림을 받아 화병이 나서 사망했다’는 주장이 주사파 출신자에 의해서 나왔다. 94년 1월 문 목사가 숨질 때까지 7개월 동안 바로 곁에서 섬겼던 하태경 열린북한방송 대표는 16일 중앙SUNDAY와의 인터뷰에서 “문익환 목사는 북한으로부터 버림을 받았다. 국내의 주사파는 북한의 지령에 따라 문 목사를 안기부 프락치로 몰았다. 문 목사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이로 인한 화병 때문이다”라는 주장을 했다. 하 대표는 “친북 인사로 알려진 문 목사가 1990년대 초반엔 북한의 대남 전략에 반하는 독자 노선을 걷고 있었다. 이로 인해 북한은 문 목사를 운동권의 중심에서 제거하려는 공작을 펼쳤다”고 말했다.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전대협) 활동을 하다가 감옥살이를 했던 하태경 대표는 ‘문 목사를 배제하기 위한 북한의 지령과 이를 둘러싼 운동권 내부의 갈등과 암투’를 중앙일보에 털어놓았다. 하 대표는 93년 6월께부터 문익환이 만든 ‘통일맞이’란 단체에 들어가 임수경이나 임종석과 함께 문익환 목사를 거들었다고 중앙SUNDAY에 고백하면서, ‘문익환 목사가 북한의 하수인으로 활동하지 않기 위해서 노력했다’고 주장했다. 90년 창설된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이 남측본부, 북측본부, 해외본부로 구성된 실제로는 북한의 지령을 그대로 집행하는 북한 정권의 하부기구나 마찬가지라서 문익환 목사가 해체하고, 해체하고 독자적으로 재야·시민단체들을 규합해 만든 통일운동조직이 ‘민족회의’라고 하태경 대표는 주장한다.

하태경 대표는 80-90년대에 얼마나 운동권이 북한의 지령에 의해 움직였는지에 대해서도 증언했다. “당시 운동권 조직들은 어떤 형식으로든 북한과 커뮤니케이션 채널이 있었다”고 고백한 하태경 대표는 “당시 문 목사는 운동권의 정신적 스승으로 추앙받고 있었다. 인도의 간디 수준이랄까, 문 목사의 권위는 대단했다. 이 때문에 학생운동권 대부분과 재야 단체들이 처음에는 문 목사의 노선을 지지했다. 그런데 그게 하루아침에 바뀌게 된다. 북한에서 날아온 팩스 한 장 때문이었다”며 범민련 북측본부 백인준 의장이 발신해서 범민련 해외본부 임인식 사무총장이 중계해준 ‘문익환은 안기부의 프락치’라는 한 장의 팩스가 문익환을 제거하게 된 배경이라고 주장했다. 남한의 종북좌익세력은 북한의 지령 한마디에 동지도 버린다는 증거다.

‘문 목사가 안기부의 사주를 받아 범민련을 해체하려는 책동을 펴고 있는데, 이를 거부하고 범민련을 지켜야 한다’는 요지의 팩스가 문익환을 제거하는 지령이 되었다는 하태경 대표의 주장이다. 하태경 대표는 “나는 이 팩스를 공개하면 안 된다고 주장했는데 민자통에서 전국의 주요 운동권 조직과 학생회 등에 전파시켰다. 당시 운동권은 주사파가 장악하고 있었는데 그들에게 이 팩스는 향후 운동 지침을 알려주는 교시나 마찬가지였다. 지하조직들은 일사불란하게 이 지시에 따랐다. 그때까지 문 목사 노선을 지지하던 운동권들이 하루아침에 돌변해 문 목사를 비판하고 나섰다. 재야단체 회의가 열리면 문 목사를 성토하는 분위기로 돌변했다”며 북한의 지령 한 마디에 모든 생각이 돌변하는 운동권의 종북노예근성을 잘 증언했다.

“문 목사가 마지막 돌아가시던 날에도 그런 성토 모임이 열리기로 돼 있었다. 이미 돌아가신 분이라 이름을 공개하긴 뭣하지만 문 목사 면전에서 ‘당신은 안기부 프락치’라고 비난한 운동권 원로도 있었다”며 종북좌익세력의 잔인성을 소개한 하태경 대표는 “이를 계기로 운동권 내부에선 소위 ‘범민련 해체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다수 세력인 주사파의 주장대로 범민련은 계속 유지됐다. 하지만 이 논쟁으로 인해 운동권의 분열이 촉발되기도 했다”며 북한의 지령에 따라 문익환을 숙청한 사건을 뒤늦게 소개했다. 주사파가 주도권을 장악한 남한의 종북좌익세력은 여전히 여야 정당에는 물론이고, 한국사회의 온갖 분야에 침투해서 북한의 지령에 따라 맹목적으로 정치선동을 전개하는 것으로 우익진영은 진단하고, 남한의 종북좌익세력 척결을 강조하고 있다.

북한의 지령에 의해 남한 운동권에서 숙청을 당한 문익환 목사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아서 사망에 이르렀다고 하태경 대표는 증언한다. 하 대표는 “(문익환 목사는) 정신적으로 어마어마한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루는 자기 방에서 나오며 ‘야, 나더러 안기부 프락치란다’고 말씀하시며 허탈한 표정으로 쓴웃음을 짓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평소 화를 잘 내지 않는 분이었는데 돌아가시기 전까지 계속 격앙된 상태로 계셨다. 문 목사가 갑자기 돌아가신 것도 그때 얻은 화병 탓이다. 결국 종북세력들이 문 목사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문익환 목사를 곁에서 지켜본 하태경 대표는 문익환 목사의 사망원인을 ‘북괴로부터 지령받아 움직이는 종북세력으로부터 버림받은 화병’으로 판단했다.

하태경 대표는 ‘이런 일들을 지금 공개하는 이유는 뭔가’라는 중앙일보 기자의 질문에 “나는 그 팩스를 보면서 북한의 실체와 이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종북세력의 행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한때는 영웅으로 떠받들던 문 목사를 그런 식으로 몰아가는 것을 보고 북한은 인간에 대한 기본적 예의도 없는 집단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아직까지 북한에 대한 환상에 빠져 있는 종북세력들도 북한의 실체를 정확하게 알아야 된다는 생각이다”라며, 남한 종북좌익세력의 잔인성을 지적했다. 하지만 하태경 대표는 문익환에 대한 환상을 버리지 못했고, 김일성이 아닌 김정일이 문익환 폐기를 지령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문익환이 남한 종북세력을 구축했고, 김일성이 김정일보다 더 잔인하다는 사실을 하태경 대표가 깊이 인지하지 않는 것 같다.

하 대표는 “나는 지금도 문 목사를 존경한다. 용기 있는 사람이고 젊은이들보다 더 생각이 유연했다. 국제정세도 잘 알았고 외국인들과 영어로 토론했다. 흔히 친북 인사로 알려져 있는데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범민련을 해체하려 한 사실이 말해주지 않나. 장준하 선생과 같은 민족주의자였기에 통일운동에 매진한 것이다. 89년에 방북한 것도 북한 공작에 넘어간 게 아니라 새로운 통일의 길을 개척하기 위해 자기 판단으로 결행한 것이다”라며 문익환을 종북인사가 아니라 단순한 민족주의자로 믿었다. ‘북한은 우리보다 못 살고, 생활수준이 낮다. 주민들이 김일성 주석을 존경하는 것 같긴 한데, 주사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상적인 사회는 아니더라’는 문익환 목사의 방북 경험을 전하면서, 하태경은 문익환을 순수한 통일운동가로 믿었다.

“어쨌든 문 목사는 김일성에 대해 대화가 가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문익환 목사를 평가한 하태경 대표는 “문 목사는 자신을 프락치로 몰아세운 팩스는 백인준의 명의로 돼 있었지만 실제로는 김일성의 지시로 보내진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 때문에 문 목사가 받은 충격이 더욱 컸다. 자신은 처벌까지 감수해가며 김일성을 찾아가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눴는데, 바로 그 김일성이 자신을 프락치로 몰았다는 사실에 대해 배신감을 느꼈던 것 같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하태경 대표는 “하지만 그 무렵의 북한은 김정일이 모든 실권을 행사하고 있었다. 훗날 황장엽 선생 등의 증언으로 명백해진 사실이다. 그러니 문제의 팩스는 김일성이 보낸 게 아니라 김정일이 보낸 것이다”라고 진단했다. 이는 김일성의 책임이 없다는 말로 들린다.

그런데 문익환 목사의 사인에 관한 의문이 생긴다. 하태경 대표는 “고령이긴 했지만 (문익환 목사는) 돌아가시던 날까지 건강하게 생활하셨다. 직원들과 저녁 식사를 할 때는 반주를 드시기도 했다. 그날도 아침에 정상 출근한 뒤 집에 들어갔다가 갑자기 쓰러진 것이다. 의학적인 견지에서는 화병이 직접 사인이 아닐지 모르지만 곁에서 지켜본 내 판단으론 화병으로 돌아가신 게 틀림없다”고 주장했다. 최근 박상학 자유북한운동연합 대표가 북한 간첩에 의해 독살당할 뻔했던 사간이 있었다. 문익환이 김일성에게 폐기의 대상이었다면, 하 대표의 주장은 맹신할 수 없다. 북한의 테러암살 습성을 감안하면, 문익환은 화병이 아니라 암살(독살)되진 않았을까? 김일성-김정일에게 버림을 받은 문익환 수준의 통일운동가가 과연 정상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
 
신경과민인지 모르지만, 불행하게도, 문익환 본색과 죽음에 대한 하태경 대표의 주장을 모두 맹신할 수는 없다. 만약 하태경의 주장대로, 문익환이 김정일에 의해서 안기부 프락치로 규정되어서 남한의 종북세력으로부터 왕따를 당하면서 버림을 받아 숙청되다면, 과연 문익환의 아들 문성근이 북한을 방문해서 김정일의 환대를 받고, 지금까지도 '100만 민란'이라는 반란운동을 계속할까? 문익환이 진실로 단순한 민족주의자고 순수한 자유통일운동가라면, 문성근은 자기 부친의 유지를 거역하고 김정일의 홍위병이 되어 저렇게 종북선동에 광신적일까? 좌익운동권 출신인 하태경 대표가 주사파의 종북노선을 비판하는 것을 옳지만, 과거에 섬기던 문익환을 종북노예로 보지 않은 것은 낭만적인 판단 같다.  [조영환 편집인: http://www.allinkorea.net/]
 

▲ 왜 중앙일보 인터넷판은 노무현과 문익환을 띄울까? 조중동 인터넷판도 좌익선동수단인가?


▲ 문익환의 아들 문성근이 대를 이어 벌이는 통일운동의 하나인 100만 민란(빨치산 횃불집회)


좌익혁명을 부추기는 골수 종북좌익분자 문성근. 혼이 뜬 정치광신도(political fanatics)다


▲ 문익환의 아들 문성근의 100만 민란 선동장면. 대를 이어 종북좌익선동을 하고 있다. 

기사입력 : 2011-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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