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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은 비상한 각오로 대비태세에 임하라!
구제불능의 호전광은 무력으로 진압해야
권재찬 코나스 편집장   |   2010-05-25
 '천안함 사태' 북한 군사도발로 결론..기습공격 당한 교훈 되새겨 거듭나는 군의 모습 보여야

  대한민국을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천안함 사건의 주범이 마침내 북한으로 드러났다. 민·군 합동조사단은 과학적·객관적 조사를 바탕으로 북한 잠수함정의 중어뢰 공격으로 결론내렸으며, 이 대통령도 대국민 담화를 통해 명백한 북한의 군사도발로 규정짓고 "앞으로 북한이 무력침범 시 즉각 군사적 응징"에 나설 것임을 분명해 했다. 나아가 우리 정부는 UN 안보리 회부를 비롯한 군사적·비군사적 조치 등 모든 가용조치를 단호히 강구해 나가기로 했다.

특히 이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우리 군도 잘못이 있었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면서 “확고한 안보태세 구축, 군 기강 확립, 군 개혁 가속화, 군 전력의 획기적 강화와 한미연합방위 공고화” 등 5개항을 우리 군당국자들에게 강도 높게 주문했음을 추호도 잊지 말아야 하며 군이 지금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명확하게 제시하고 있다.

우리정부의 대북 조치가 잇따르자 북한은 예상했던 바대로, 자신들의 소행임을 극렬 부인하며 전면전쟁 운운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에 우리 군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비상한 각오로 확고한 대비태세를 유지해 나가야 한다.

싸울 대상인 적의 실체부터 분명히 인식해야

최우선적으로 군은 북한의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그들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대남적화전략과 그 위협의 실상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은 1962년부터 4대 군사노선(전인민의 무장화, 전국토의 요새화, 전군의 간부화, 전군의 현대화)을 추진해 온 결과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강력한 군사병영체제를 구축했다.

현재 북한은 정규군이 119만여 명(육군 102만여 명, 해군 6만여 명, 공군 11만여 명)에 이르고, 노농적위대·교도대·붉은청년근위대 등 예비전력이 730만여 명, 국방위원회 직속의 호위사령부, 군수동원총국과 인민보안부 소속의 공병총국, 당 근로단체부 속도전지도총국 청년돌격대 등 준군사부대가 약 40만 명에 달한다. 북한 인구를 2,300만 명으로 계산할 때 북한 전체 주민의 39%가 무장하고 있는 셈이고, 14세 이상 주민을 계산 시 전체 주민의 50% 이상이 무장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러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북한의 군사전략은 한반도 여건을 감안해 미 증원군 도착 이전에 전쟁을 종결하는 단기 속전속결 전략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해 초전 기습공격과 정규·비정규전의 배합전으로 전쟁의 주도권을 장악하고 강력한 화력과 기갑·기계화부대로 전과 확대를 시도한다는 것이다.

특히 최근에는 아프가니스탄전과 이라크전 교훈을 바탕으로 특수전 능력을 향상시키고 도시작전과 야간·산악훈련을 강화하고 있다. 북한은 강력한 한미연합 방위태세로 더 이상의 전면전은 승산이 없다고 판단하고 핵·미사일·화학무기 등 비대칭 전략 증강에 혈안이 돼 있으며, 최근 천안함을 중어뢰로 공격하는 등 국지도발 및 테러행위를 자행해 오고 있다.

해방이후 북한의 도발사례

북한은 1948년 공산정권 수립 이래, 대남적화통일을 달성하기 위해 약 2,800여 회의 반민족적 범죄행위를 자행해 왔다. 6·25전쟁에서 국군과 유엔군 17만8,000명이 전사하고 55만5,000여 명이 부상당했으며, 8만2,000여 명이 실종됐다. 또 100만 명에 가까운 민간인이 사망·학살·부상·납치·행방불명 등으로 우리 민족의 가슴에 천추의 한을 남겼다.

1960년대 북한은 1960년 8·15경축대회에서 김일성이 연방제를 제의하는 등 위장평화공세를 전개하며, 군사적 도발을 지속적으로 감행했다. 1968년 124군부대 소속 무장공비 31명이 청와대 습격을 목표로 침투했던 1·21청와대 기습사건, 미 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호 납치사건, 그리고 무장공비 120여 명을 침투시켜 양민을 학살한 울진·삼척 무장공비사건 등이 1960년대의 대표적인 도발 사례다.

1970년대에는 남북 간 대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됐으나, 북한의 화전(和戰) 양면 전술은 지속됐다. 1971년 8월 우리 측이 남북 적십자회담을 제의한 이듬해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됐다. 남북 대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던 이 시기에 북한은 기습남침을 위한 땅굴을 파 내려오기 시작했다. 1974년 11월 서부전선 고랑포 일대에서 제1땅굴이 발견된 이후 지금까지 철원·파주·양구 등 네 곳에서 남침용 땅굴이 발견되었고 그 땅굴은 유사시 우리에게 위협의 산물로 남아있다.

또 1975년 10월 노동당 창건 30돌 기념대회에서 남북 군대를 10만 명으로 감축하자고 제의한 뒤 1976년 8월18일 판문점 경비구역에서 미루나무 가지 절단작업을 하던 유엔군 경비병들을 도끼로 살해하는 천인공노할 '8·18도끼 만행사건'을 저질렀다.

1987년 11월11일에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이름으로 서울 올림픽 동시개최, 무력충돌 방지와 긴장완화를 위한 긴급조치 강구 등을 포함한 ‘민족단합 5개항’을 발표했으나 며칠도 채 지나기 전인 11월 19일 KAL 858기를 공중 폭파시켜 115명의 인명을 앗아가는 만행을 저질렀다. 1994년 3월 제8차 남북 특사교환을 위한 실무대표 접촉에서 ‘서울 불바다’ 협박을 하며 회담을 중단시키는가 하면 북한 해군 경비정이 북방한계선(NLL)을 수시로 월경하는 도발을 자행했다.

특히 1996년 9월18일 북한 무장간첩 26명이 잠수함(300톤 이상으로 어뢰발사 능력이 있으며 작전지속 능력이 길다)을 이용, 강릉해안에 침투한 것을 시작으로 1998년에는 소떼 방북·장관급 회담 등 ‘교류·협력·화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가운데 6월 22일 속초 인근으로의 잠수정 침투, 7월12일 동해시 앞바다에 무장간첩 침투 등 잠수함·잠수정을 이용한 연이은 도발을 자행함으로써 그들의 이중성을 드러냈다.

또 1999년에는 남북 고위급 정치회담과 차관급회담 개최를 합의해 놓고 6월 15일 서해상에서는 무력도발(제1연평해전)을 자행했다.2000년 6월 15일 남북정상회담 이후 남북관계가 진전돼 가고 있는 상황에서 2001년 6월 북한 선박이 우리 영해를 침범하는 등 북한 함정이 매년 20여 차례 NLL을 월선, 침범했다.

2002년 6월 29일 월드컵 3~4위전이 열리는 날 우리 해군함정을 기습 공격해 참수리 357호정 정장 윤영하 소령 외 5명을 전사(제2연평해전)케 했으며 2009년 11월10일 북한의 서해 NLL 무력침범으로 대청해전이 발생했다.

북한은 2009년 5월25일 국제적 경고(유엔결의 1718호)에도 불구하고 또 한 차례의 핵실험을 감행했다. 이어 5월 25일 함경북도 화대군에서 사거리 130㎞의 단거리 미사일 1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하고, 강원도 원산시에서 2발의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했다. 또 26일에도 함경남도 함흥시 인근에서 동해상으로 단거리 미사일 두발을 발사했다.

이 같은 수많은 도발은 그들의 궁극적 목적인 대남적화 전략을 달성하기 위한 행위로 이러한 도발행위는 북한 정권이 붕괴하는 그 순간까지 자행된다는 것을 우리는 각별히 명심해야 한다.

강력하고 빈틈없는 대비태세 유지해야

우리 군은 이러한 과거 북한의 도발사례와 이번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유사시 현장에서 완전작전을 수행할 수 있도록 긴장을 늦추어서는 안되며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해 나가야한다.

첫째, 적대세력의 도발 징후에 대한 정보감시태세를 보강해 나가야 한다. 우리 해군 초계함이 우리 영해에서 경계 작전 임무를 수행하던 중 북한 공격을 받아 침몰했다. 이처럼 군의 가장 기본인 경계 작전 임무 수행 중 기습을 허용한 것은 적을 찾아야 하는 정보의 실패요, 적의 기습으로부터 우리의 전투력을 보존해야 하는 경계작전의 실패를 의미한다.

둘째, 초동조치 및 위기관리체제를 보완해야 한다. 우리 군이 상황보고 및 초동조치를 위해 평소 잘 준비된 계획과 조직이 갖춰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발생 시 체계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군 지휘계통 보고의 핵심요소인 신속한 상황보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며, 현장 상황이 제대로 보고되지 않았고 보고 내용도 정확하지 않아 혼선을 유발했다. 따라서 어떠한 위기상황이 발생하더라도 일사불란하게 대처할 수 있도록 위기관리체제 전반을 재정비해야 한다.

셋째, 적 도발에 대비해 작전태세를 보완하고, 전투기량을 행동화할 수 있도록 숙달해야 한다. 적 도발양상을 고려해 서북해역의 대비개념을 재정립하는 한편, 경비전력의 통합운용 개념을 발전시키고, 특히 한미 연합 대잠훈련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

넷째, 군사력 건설 방향을 재조정·검토해야 한다. 지금까지 군사력 건설 분야에서 침투 및 국지도발에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점을 감안해 위협의 우선순위를 재평가해 군사력 건설의 방향을 재조정해야 한다.

다섯째, 장병 정신을 재무장하고, 실전적 교육훈련을 강화시켜 나가야 한다. 강한 정신력이 강군의 요체임을 명심하여 우리 군은 정신 재무장을 통한 강한 군으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상급자부터 확고한 대적관을 견지한 가운데 항재전장 의식으로 전투적 사고와 기풍을 진작시키고, 군기강을 확립해야 한다.

여섯째, 한미연합 방위태세의 강화이다. 우리 군의 완벽한 군사대비태세를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리 군의 부족한 전략자산을 메워 줄  미군과의 연합작전능력이 더욱 공고히해야 한다. 즉, 한미팀스리트 훈련을 정례화 시켜야 한다. 또, 우리군의 자주국방태세가 완료될 때까지 한미연합작전을 지속하기 위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유보하고 연합사체제를 더욱 발전시키는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이번 ‘천안함 사태’는 우리 군이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인 적과 대치하고 있다는 엄연한 사실을 다시금 일깨워 줬다. 지난 60년간의 적대적 공존관계가 ‘불안정한 평화’ 임을 한순간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군 스스로가 목숨을 건다는 각오로 대비하지 않으면 우리 국민들이 누리고 있는 자유와 평화를 지킬 수 없다. 천안함 사태를 계기로 우리 군이 새롭게 달라졌다는 것을 우리 국민들에게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 줘야 한다. 이것은 역사와 국민이 국군 장병에게 내리는 준엄한 명령이다.

인터넷안보전문誌 코나스/http://www.kona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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